
안녕하세요. JCL Partners 이상덕 대표변호사입니다. 최근 상가건물 임대인 A씨로부터 급한 전화를 받았습니다. 10년 넘게 임대해온 식당 임차인이 퇴거하면서 보증금 1억 5천만원 전액을 돌려달라는 내용증명을 보내왔다는 겁니다. 그런데 A씨 입장에서는 황당할 수밖에 없었죠. 임차인이 5년 전부터 차임을 제대로 내지 않아 밀린 금액이 무려 7천만원에 달했기 때문입니다.
“변호사님, 보증금이 뭐 하러 있는 겁니까? 당연히 밀린 월세 빼고 드리면 되는 거 아닌가요?”
A씨의 질문은 지극히 상식적으로 들립니다. 하지만 임차인 측 변호사는 “차임채권은 3년이면 소멸시효가 완성되므로 5년 전 차임은 청구할 수 없다”며 법리를 들이댔습니다. 과연 소멸시효가 지난 연체차임도 보증금에서 공제할 수 있을까요?
보증금에서 공제, 법으로는 어떻게 정해져있나
먼저 기본 개념부터 정리하겠습니다. 민법상 차임채권의 소멸시효는 3년입니다. 2020년 1월분 차임이라면 2023년 1월이 지나면 소멸시효가 완성되는 겁니다. 그렇다면 임대인은 이 돈을 아예 받을 수 없는 걸까요? 표면적으로는 그렇게 보입니다. 소멸시효가 완성된 채권으로 소송을 제기하면 채무자가 시효항변을 할 경우 패소하게 되니까요.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구별이 필요합니다. 일반 채권을 ‘청구’하는 것과 보증금에서 ‘공제’하는 것은 법적 성격이 다릅니다. B씨는 2억원 보증금을 받고 상가를 임대했는데, 임차인이 3년간 차임을 전혀 내지 않다가 갑자기 폐업하며 보증금 전액을 요구했습니다. 이런 경우 임대인이 별도의 소송으로 밀린 차임을 청구한다면 소멸시효 항변에 막힐 수 있지만, 보증금 반환시 당연히 공제할 수 있다는 게 법원의 확고한 입장입니다.
임대차보증금은 단순히 나중에 돌려받을 돈이 아니라 임대차 관계에서 발생하는 임차인의 모든 채무를 담보하는 기능을 합니다. 차임 미지급은 물론이고 목적물 손괴에 따른 손해배상채무까지 보증금으로 담보되는 거죠. 대법원은 이미 1987년부터 “임대인의 보증금 반환의무는 임대차보증금 중에서 목적물을 반환받을 때까지 생긴 연체차임 등 임차인의 모든 채무를 공제한 나머지 금액에 관하여서만 이행기에 도달한다”고 판시해왔습니다.
소멸시효 완성됐어도 보증금공제 가능한 이유
그렇다면 왜 소멸시효가 완성된 차임도 보증금에서 공제할 수 있을까요? 법리적 근거는 민법 제495조입니다. 이 조항은 “소멸시효가 완성된 채권이 그 완성 전에 상계할 수 있었던 것이면 그 채권자는 상계할 수 있다”고 규정합니다. 쉽게 말해 시효가 완성되기 전에 이미 양쪽 채권이 맞부딪칠 수 있는 상태였다면, 나중에라도 상계가 허용된다는 뜻입니다.
C씨의 사례를 보겠습니다. 2019년 12월 차임이 2022년 12월에 소멸시효가 완성됐지만, 임대차 계약은 2024년까지 계속됐습니다. 이 경우 2022년 12월 시점에는 아직 임대차가 유지되고 있었으므로 보증금을 돌려줄 의무 자체가 발생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민법 제495조를 직접 적용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대법원은 2016년 판결에서 한 발 더 나아갔습니다. “차임이 연체되고 있음에도 임대인이 보증금에서 연체차임을 충당하지 않고 임대차를 계속한 경우, 당사자들은 장차 보증금에서 충당 공제되는 것을 용인하겠다는 묵시적 의사를 가지고 있다“고 본 것입니다. 임대인 입장에서는 거액의 보증금이 있으니 굳이 소송까지 할 필요가 없었고, 임차인도 보증금이 충분하다는 점에 의지하여 연체를 계속했다는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민법 제495조를 유추적용하여 보증금에서의 공제를 허용한다고 해도 당사자의 합리적 기대에 부합한다는 논리입니다.
이는 우리나라 임대차 시장의 특수성을 반영한 판단입니다. 외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보증금 규모가 매우 크고, 보증금과 월차임을 병행하는 구조가 일반적이기 때문입니다.
계약 갱신된 경우도 공제 가능할까, 2025년 판례의 의미
여기서 복잡한 문제가 하나 더 있습니다. 임대차 계약이 여러 차례 갱신된 경우입니다. D씨는 2008년 첫 계약을 맺은 후 2013년, 2017년 두 차례 갱신하면서 보증금 1억 5천만원을 그대로 유지했습니다. 그런데 2008년부터 2012년 사이 발생한 연체차임 중 일부는 2013년 계약 갱신 시점에 이미 소멸시효가 완성된 상태였습니다.
임차인 측은 주장했습니다. “2013년 새 계약을 체결하면서 보증금을 그대로 승계했다는 것은 과거 채권을 청산했다는 의미다. 이미 시효 소멸된 차임을 2017년 계약의 보증금에서 공제할 수 없다.” 일견 타당해 보이는 주장입니다. 하급심 법원도 같은 취지로 판단했습니다.
그러나 대법원은 2025년 3월 27일 선고한 2024다302217 판결에서 원심을 파기했습니다. 핵심 판시 내용은 이렇습니다.
“차임이 연체되고 있음에도 보증금에서 연체차임을 충당하지 않은 채 그대로 기존 계약의 보증금을 새로운 계약의 보증금으로 갈음하기로 한 임대인의 신뢰와, 차임연체 상태에서 새로운 계약을 체결해 온 임차인의 묵시적 의사를 감안하면, 소멸시효가 완성된 기존 계약의 연체차임도 임대차관계가 최종적으로 종료되어 실제로 목적물이 반환될 때 보증금에서 공제된다.”
이 판결로 인해 계약이 여러 번 갱신되었더라도, 보증금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연체차임을 정산하지 않았다면 최종 임대차 종료시 소멸시효와 관계없이 모든 연체차임을 보증금에서 공제할 수 있다는 원칙이 명확해졌습니다. 이는 임대인에게 매우 유리한 판결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임차인 입장에서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그렇다면 임차인은 무조건 불리한 걸까요? E씨는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으며 2020년부터 차임을 연체했지만, 임대인이 “나중에 여유있을 때 주면 된다”며 2023년 계약도 갱신해줬습니다. E씨 입장에서는 임대인이 묵인했다고 믿었던 겁니다. 그런데 이제 폐업하려니 임대인이 5년 전 밀린 차임까지 모두 보증금에서 공제하겠다고 나왔습니다.
법원은 임대인의 이런 태도를 소멸시효 포기가 아니라 “보증금에서 나중에 정산하겠다는 의사”로 해석합니다. 하지만 임차인이 완전히 속수무책인 것은 아닙니다. 몇 가지 방어 방법이 있습니다.
첫째, 실제 연체액을 정확히 계산해야 합니다. 임대인이 주장하는 금액에 과다계산이나 이미 변제한 부분이 포함됐을 수 있습니다. F씨의 경우 꼼꼼히 확인한 결과 임대인이 중간에 2개월치 차임을 면제한다고 문자로 보낸 내역을 발견해 그 부분만큼은 공제 대상에서 제외시킬 수 있었습니다.
둘째, 계약 갱신 당시 기존 차임을 청산하기로 한 명시적 합의가 있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카카오톡이나 문자메시지로라도 “과거 밀린 돈은 없던 것으로 한다”는 내용이 있다면 강력한 증거가 됩니다.
셋째, 보증금을 초과하는 연체차임에 대해서는 여전히 소멸시효 항변이 가능합니다. 보증금이 8천만원인데 연체차임이 1억 2천만원이라면, 8천만원까지는 보증금에서 공제되지만 나머지 4천만원에 대한 별도 소송에서는 시효항변이 가능한 겁니다.
임대인이라면 꼭 알아야 할 실무 대응법
임대인 입장에서는 판례가 유리하게 나왔다고 안심할 게 아니라 예방적 조치가 필요합니다. 첫째, 차임이 연체되면 즉시 내용증명을 보내 독촉 기록을 남기세요. 내용증명을 보내면 소멸시효가 6개월간 중단됩니다. 6개월마다 한 번씩이라도 독촉하면 소멸시효를 사실상 막을 수 있습니다.
둘째, 계약 갱신시에는 반드시 특약을 넣으세요. “현재까지 연체차임 ○○만원은 임대차 종료시 보증금에서 공제하기로 한다”는 문구를 계약서에 명시하면 나중에 분쟁 소지가 대폭 줄어듭니다. 판례가 유리하더라도 서면으로 명확히 해두는 것이 최선입니다.
셋째, 보증금보다 연체차임이 많아질 것 같으면 조기에 계약해지를 고려하세요.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은 차임을 3기 이상 연체하면 임대인이 계약을 해지할 수 있도록 규정합니다. 3개월치 차임이 밀렸다면 내용증명으로 최고한 후 상당기간 내 미지급시 해지 통보를 하면 됩니다. 보증금으로 담보되지 않는 부분이 커지기 전에 조치를 취해야 합니다.
넷째, 상계 의사표시를 명확히 하세요. 임대차 종료시 “보증금 ○○만원에서 연체차임 ○○만원을 공제하고 나머지 ○○만원을 반환한다”는 내용증명을 보내면 법률관계가 명확해집니다.
구체적 사안에 따라 결론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연체차임보증금공제 문제는 개별 사안의 구체적 사정에 따라 결론이 크게 달라질 수 있습니다. 계약서에 어떤 내용이 있는지, 당사자간 합의 내역은 무엇인지, 실제 연체기간과 금액은 얼마인지, 임대인이 독촉했는지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합니다.
G씨의 경우 표면적으로는 불리해 보였지만 자세히 들여다본 결과 임대인이 3년간 단 한 차례도 차임 독촉을 하지 않았고, 오히려 “장사 잘 되면 그때 주세요”라는 문자를 여러 차례 보낸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이런 경우 신의칙 위반을 주장할 여지가 생깁니다. 반면 H씨는 매달 차임 독촉 문자를 받았고 “다음달에 꼭 드리겠다”고 답장한 기록이 수십 건 있어 변명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최근 대법원 판례로 연체차임보증금공제에 관한 법리가 임대인에게 유리하게 정리되었지만, 그렇다고 모든 임차인이 속수무책인 것은 아닙니다. 구체적 증거와 사실관계에 따라 충분히 방어할 수 있는 여지가 있습니다. 반대로 임대인도 판례만 믿고 방심하다가는 절차적 하자나 증거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을 수 있습니다.
연체차임보증금공제 문제로 고민이시라면 계약서, 차임 납부내역, 당사자간 문자메시지나 카카오톡 대화, 내용증명 발송 기록 등 증거자료를 꼼꼼히 챙겨 전문가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 특히 금액이 큰 경우라면 초기 대응이 매우 중요합니다. 임대차가 종료된 후보다는 분쟁 조짐이 보일 때 미리 법률검토를 받는 것이 훨씬 유리합니다.

저희 JCL Partners는 부동산 임대차 분쟁을 전문으로 다루고 있으며, 이번 대법원 판례와 관련된 실제 사건도 수행한 경험이 있습니다. 보증금 정산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계신다면 구체적인 자료를 준비하셔서 상담받아보시길 권해드립니다. 정확한 법률 분석을 통해 최선의 해결방안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 위 내용은 의뢰인의 개인정보보호를 위하여 일부 각색한 사안입니다.



